[신간] 코로나 시대의 걷기... 출퇴근길을 ‘순례’로 만들다
[신간] 코로나 시대의 걷기... 출퇴근길을 ‘순례’로 만들다
  • 윤화정 기자
  • 승인 2020.10.30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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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산티아고 걸은 저자, 일상에서 800km·100만보 걷기 프로젝트
자신이 딛고선 자리·숨쉬는 순간 사랑하려 애쓴 기록 '일상이 산티아고'

회사생활 11년차 직장인이 사무실 동료와 점심을 먹고 있다. 빠듯한 1시간을 쪼개 즉석떡볶이를 볶다가 스치듯 내뱉는다.

“다음 책은 걷기에 대해서 쓸까 봐요. 입사 전 산티아고 순례길 다녀온 지도 12년이 다 됐네요. 다시금 가서 걸어보고도 싶은데 한 달 시간 내기가 만만찮으니까요. 뭐, 밥벌이하는 사람의 숙명 아니겠어요?”

시간에 쫓기며 후다닥 떡볶이를 해치우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그는 자신이 내뱉은 말에 문득 겁이 났다. ‘이제 이게 숙명이구나. 산티아고에 다시 가는 날을 꿈꾸며 언젠가 시간이 나기만을 기다리는 삶.’ 쓸쓸해졌다. 12년 전, 24세 청년는 무슨 생각을 하며 걸었을까? 궁금한 마음도 생겼다. 퇴근 후, 그때 기록을 펼쳤다.

2008년, 혈기 넘치는 젊은이는 물었다. ‘내가 누구인지, 세계는 내게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말이다. 노트를 덮고나니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궁금해졌다. 용기를 냈다. ‘스페인에 못 간다면 지금, 여기를 산티아고로 만들 수도 있잖아? 항상 떠오르는 태양처럼 매일 다니는 길을 산티아고라 생각하면 되잖아?’

저자는 다음 날부터 왕복 20km를 걸어서 출퇴근한다. 하루 3만보를 걷는다고 치면, 산티아고길과 같은 거리를 걷기까지 40일은 필요했다.

매일 만보계를 차고 걸음수를 측정하며 자신의 시도를 ‘일상이 산티아고’라 이름 붙였다. 2월 중순에 시작된 원맨 프로젝트 ‘일상이 산티아고’는 결국 4월 초가 돼서야 끝난다. 모두 49일이 걸렸다.

저자는 매일 아침 걸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에 몸을 맡겼다.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이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죽음은 어떤 의미인가.’ 회사에서 점심을 먹으며 꺼낸다면 딱한 눈빛으로 쳐다볼 법한 질문이었다. 새벽 출근길에 품은 의문은 회사로 들어오며 접어뒀다. 대신 거친 생각을 글로 토해냈다.

이 책은 저자가 2008년에 기록한 한 달간의 단상을 가져와 하루하루 비교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저자는 고백한다. “강산이 변할만큼 시간이 흘렀건만 부끄럽게도 내면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그게 본질이라면 이제 자신을 받아들여야겠다”고. 따라서 <일상이 산티아고>는 ‘내가 나를 감싸안으려는 몸부림의 기록’이다.

<일상이 산티아고>는 꼭 스페인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딛고선 자리와 자신이 숨쉬는 순간을 사랑하려 애쓰니 지금, 여기도 산티아고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일상에서 내디딘 한 걸음 한 걸음이 살아있음을 깨닫는 여정이었다고 말이다. (부크크 출간, 11,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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