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산의 역사시론] 패전 후 일본의 역사관들
[송산의 역사시론] 패전 후 일본의 역사관들
  • 송산
  • 승인 2021.03.2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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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재판사관'과 '사회주의 환상사관'의 공존

1945년 8월 일본은 전쟁에 패함으로써 입은 상처는 매우 깊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50년간 일본인은 세상을 둘로 나눈 초강대국 미국과 소련의 서로 다른 역사관을 애매모호하게 일본 사회에서 공존시켜 왔다.

이른바 미국, 영국 등의 민주주의 체제는 언제나 옳고 세계사의 모델이라고 생각하며 제 2차 세계대전은 영국과 미국의 민주주의가 일본과 독일의 파시즘을 물리친 정의와 승리의 전쟁이었다는 가설 - 이것을 '도쿄재판사관‘이라 한다.

한편 소련을 대표로 하는 공산주의 체제는 평화세력이고 미국을 대표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전쟁세력이라는 패전 후에 특히 지배적이 된 가설 - 이것을 ’사회주의 환상사관‘이라 한다.

일본인은 지금까지 도쿄재판사관에 승복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미국과 영국의 민주주의가 세계사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반드시 훌륭하지 못하고 동아시아 역사에는 나름대로 고유한 민주주의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도쿄 전범재판정 모습 [사진=서해문집 캡처]
도쿄 전범재판정 모습 [사진=서해문집 캡처]

또한 일본과 독일은 동맹국이었다고는 하지만 함께 전쟁을 치른 것은 아니다.

일본에는 나치 독일의 유태인학살과 같은 문제는 없었다.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전쟁은 유럽에서 일어난 전쟁과 기본적인 성격이 다르다.

한편 사회주의 환상사관은 1945년부터 1975년까지 유행했으나 세계가 다 아는 바와 같이 1980년대에 들어와서 세계적으로 한꺼번에 퇴조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가속화된 후 소비에트 연방의 소멸로 끝나버렸다.

일본인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도쿄재판사관과 사회주의 환상사관 -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상이한 두 역사관을 비논리적으로 무리하게 맞추어서 머리 속으로만 관념적인 역사지도를 그려왔다. 어떤 의미에서는 계속 자신을 속여왔다.

신문이나 공영방송(NHK) 그리고 교과서가 계속해서 그려온 역사는 이 납득할 수 없는 두 가지 역사관의 절충이었다.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났는가?

한반도는 독일과 함께 분단국가가 되었으므로 일본의 이 어리석은 자기 은폐극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국토가 분단되지 않은 대신에 일본인들의 마음 속에 38선이 그어졌다. 그 결과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쟁이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일본인은 내전의 유혈참사를 회피하고 싶은 갈망을 거의 무의식 속에서 본능적으로 마음에 품고 패전 후 시대를 보냈다.

자민당과 사회당, 즉 보수와 좌익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자민당은 단 한사람의 탈당자도 허락하지 않았고, 사회당은 최고 160석 이상의 의석 획득이 허용되지 않았다. 1955년부터 1993년까지 대치정국을 이어온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일본인은 미국의 역사관과 구소련의 역사관 양쪽을 혼합해 둘을 합쳐 둘로 나눈 부자연스러운 사고방식을 만들어냈다. 이로써 자국의 역사를 그리게 됨으로써 국내 평화를 유지, 경제번영의 길을 개척하는데 성공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일본인의 ‘지혜’였다.

그러나 지혜이면서 교묘한 삶의 방식이었기 때문에, 그 대신 일본인은 ‘자기 자신의 역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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