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모소’대나무와 대선 후보의 도덕성
[기고] ‘모소’대나무와 대선 후보의 도덕성
  • 김희정
  • 승인 2021.08.03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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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소’의 가능성을 믿는 농부들은 ‘괄목상대’할 날을 기다리며 정성껏 돌본다.

 

▲사진=김희정 (前 KBS 아나운서, 외식신문 논설위원)
▲사진=김희정 (前 KBS 아나운서, 외식신문 논설위원)

 ‘모소’대나무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모소’라는 대나무는 중국의 동부지방에서 자라는 희귀종이다. ‘모소’는 처음 4년간은 거의 자라지 않아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5년째가 되면 하루에 한자씩 자라 6주 만에 15m 넘는 성장을 한다. 그럼 4년 동안 무엇을 하는 것인가? ‘모소’는 다른 나무들이 섣불리 키 크기 경쟁을 하는 동안 땅속에서 준비기간을 갖는다. 최대한 넓고 깊게, 단단하고도 촘촘히 뿌리를 내린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그 엄청난 기반으로 일시에 양분을 빨아들여 모두를 압도하는 것이다.
 
 호남지역에서 한 후보의 성장세가 눈부시다. 오마이뉴스가 리얼 미터에 의뢰한 여론조사(7.26~7.27, 전국의 성인남녀 2058명 대상)에 따르면 정세균 후보가 호남에서 9.9%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직전 조사의 두 배가량 상승한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10%포인트, 이낙연 후보는 0.7%포인트 하락했다. 

 호남은 우리나라 정치와 민주화 과정에서 의미 있는 곳이다. 우리 사회를 끌고 갈 미래의 리더를 발굴하는 곳이기도 하다. 즉, ‘모소’대나무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모소’가 죽은 듯 정체되어 보일 때, 다른 지역 농부들은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모소’의 가능성을 믿는 농부들은 ‘괄목상대’할 날을 기다리며 정성껏 돌본다. 

 2002년으로 돌아가 보자. 제16대 대선 후보를 뽑는 새천년민주당 경선에서 광주는 최대 승부처였다. 리틀 DJ로 불리던 한화갑 후보의 홈그라운드였고 당시 대세로 여겨지던 이인제 후보가 맹렬히 뛰고 있었다. 그러나 광주는 노무현 후보를 선택했다. 민주화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고군분투한 ‘바보’ 노무현의 가능성을 알아본 것이다. 충격적인 결과에 한화갑 후보는 사퇴를 했고 이인제 후보 측은 ‘노무현은 빨갱이’라는 전단까지 살포했다. 그러나, 전남에서 다시 노무현 후보가 압도적으로 1위를 하면서 사실상 승부가 결정되었다. 

 요즘, 더불어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이 우려를 사고 있다. 결국 ‘원팀’이 되어 정권 재창출을 이뤄내야 할 당사자들인데 ‘팀킬’의 모양새가 속출한다. 정책 검증은 뒷전이 된 채 흑역사 규명 차원에서 헤매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행적에 대해 명확한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미래로 나아가기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믿을 수 있는 후보가 필요한 것이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을 설득하는 힘의 원천으로 ‘에토스(ethos)'를 꼽았다. 우리말로는 ‘인품을 통한 영향력’쯤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지금 지지율이 높다는 유력 대선후보들은 ‘에토스’적 위기에 봉착해있다. 이재명 후보는 ‘바지’와 ‘백제’ 발언으로, 이낙연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시 처신으로 신뢰성에 금이 갔다.

 야당에서 지지율 수위를 달린다는 윤석열 후보의 경우는 ‘에토스’의 손상이 심각하다. 그는 최근 대권 도전에 나선데 대해 “개인적으로 보면 불행한 일이고 패가망신하는 길”이라고 말했단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기 위해 군복을 벗으면서 “다시는 나처럼 불운한 군인이 없기를 바란다.”고 했다더니 유체이탈 화법의 맥을 잇는 발언이다. 국민은 대선후보의 패가망신을 바라지 않는다. 검증을 통해 신뢰가 더하고 능력이 빛을 발하는 후보를 원한다.
 
 윤 후보의 경우, 야당의 본격적인 경선이 시작되기도 전에 부인을 빗댄 듯한 벽화와 노래까지 등장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후보 부인의 사생활이 검증의 대상인가?”라고 하는데 어이없는 질문이다. 그것이 어찌 사생활인가? 부인과 장모의 행각은 윤 후보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검증 때문에 패가망신할 정도로 살아온 후보는 국가적 망신이요, 국민의 불행이다. 윤 후보는 ‘로고스(logos)’적 결여까지 겸했다. 로고스는 '논리적 설득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한열 열사의 벽화를 보며 “이것은 부마(항쟁)인가?”라고 묻는 영상은 보는 사람까지 부끄럽게 만든다. 

 정세균 후보는 긴 시간 정치를 해왔지만 결점이 없다. 정치 전문가 집단이 정 후보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이다. 예선에서 후보로 나섰던 이광재 의원, 양승조 충남도지사가, 잘나가는 후보들을 두고 정 후보와 단일화를 했다. 정 후보의 도덕성과 능력을 믿기 때문이다. 민주연구원장을 지낸 여의도의 브레인, 김민석 의원도 정 후보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모소’대나무의 뿌리가 단단하게 내려지고 있는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국제 정세와 경제 패권 전쟁 속에서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지도자를 검증하는 과정이 최소한의 인격과 교양 차원에 머물러 허우적대지 않길 바란다. 인품과 경륜, 신뢰감을 기본으로 장착한 후보들 간에 정책과 비전으로 대결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과거, 잘살아보자며 물불가리지 않고 산업화를 이루려던 대한민국이 아니다. 촛불혁명으로 세계가 감탄했던 정치 선진국이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루어야 하는 시점이다. 신뢰와 도덕성이 결여된 리더로는 선진 대한민국을 완성할 수 없다. 다가오는 대선은 ‘모소’대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어 전 세계가 주목하는 아름다운 정치 축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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