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상속공제 개편…'부의 세금없는 대물림' vs '턱없이 부족'
가업상속공제 개편…'부의 세금없는 대물림' vs '턱없이 부족'
  • 김근영 기자
  • 승인 2019.06.1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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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개혁硏 "소수의 고소득층 위한 제도…사후관리 요건 더 강화해야"
중견기업聯 "반기업정서에 흔들린 결과…공제 대상·한도 확대해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1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업상속 지원세제 개편방안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1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업상속 지원세제 개편방안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내년부터 가업(家業)상속 공제 혜택을 받는 중소·중견기업의 업종·자산·고용 유지의무 기간이 10년에서 7년으로 줄어드는 등 규제가 다소 완화된다.

다만 산업계와 여당의 요구처럼 가업상속공제 대상 기업을 늘리지는 않고 기존대로 중소기업과 매출 3000억원 미만 중견기업으로 한정했다. 또 공제 한도도 기존처럼 최대 500억원으로 유지된다.

정부와 여당이 11일 가업상속공제 요건이 까다로워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중소·중견기업의 입장을 수용해 공제대상은 늘리지 않되 공제 요건을 완화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제도가 '부의 세금 없는 대물림'을 가능하게 해 조세 형평성을 훼손하는 정책으로, 정부의 이번 개편안이 일부 소수 계층에 대한 특혜라는 비판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됐다.

업계 역시 공제 대상 확대 등이 빠져 기대에 미치지 못한 개편안으로 정부가 가업상속세 개선 시늉만 했다는 불만을 보이고 있다.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100년 전통의 명품 장수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로 1997년 도입됐다.

현행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피상속인이 10∼30년 이상 영위한 중소·중견기업을 상속인에게 승계하는 경우 최대 500억원까지 기초공제를 해 중소·중견기업의 원활한 가업 승계를 지원한다.

지난 10년간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수차례 개정되며 적용 대상과 공제 규모가 지속해서 확대됐다.

가업상속공제는 1997년 도입 당시 공제 한도가 1억원이었으나 2008년 30억원, 2009년 100억원, 2012년 300억원, 2014년 500억원으로 급격히 상승했다.

공제대상도 처음에는 중소기업에 한정됐으나 2011년 매출액 1500억원 이하의 중견기업으로 확대됐고, 현재는 3년 평균 매출액이 3000억원 미만인 중견기업까지 공제가 가능해졌다.

작년 기준 매출액 3000억원 미만 중견기업은 전체 중견기업의 86.5%에 해당하는 3471개다.

다만 2011년 사후관리 요건에 고용유지 요건을 추가해 요건을 더 강화한 적도 있었다.

이처럼 제도 도입 이후 적용 대상과 공제 규모가 급격히 늘었지만 제도 이용은 미미한 증가에 그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왔다.

제도 도입 초기인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연간 공제 건수가 40∼50여건에 그쳤으며, 최근 3년을 보더라도 2015년 67건, 2016년 76건, 2017년 91건으로 이용이 저조했다.

이와 관련 재계에서는 가업상속공제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혜택을 받는 기업이 적다고 주장하며 공제 요건 완화를 요구해 왔고, 정부가 이번에 공제 제도의 사후관리 기간을 10년에서 7년으로 줄이고 요건을 완화하는 개편안을 내기에 이르렀다.

업계에서 "10년간 기업이 존속할지 장담할 수 없는데 어떻게 가업을 물려받으라고 하나", "보유 기술을 활용해 기존 사업과 관련 있는 새 사업에 도전하고 싶어도 업종 변경이 불가능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등 문제 제기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를 두고 시민단체에서는 '부의 대물림'을 용이하게 하는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완화한 것은 소수 계층만 혜택을 보게 하는 잘못된 결정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지난 4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가업상속공제를 받는 인원은 전체 피상속인의 0.02%에 불과해 소수의 고소득층을 위한 제도"라며 "불평등의 해소를 주장했던 이번 정부에서 가업상속공제를 완화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또 "사업 기간, 주식보유 요건, 대표이사 재직 요건 등 공제 요건이 이미 2008년에 비해 상당히 완화된 데 반해, 공제 한도는 30억원에서 500억원까지 상승했음을 고려하면 요건은 더 강화돼야 맞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수기업, 100년 기업을 주장하는 재계가 10년의 사후관리 요건을 만족하기 어렵다는 주장 자체가 모순"이라며 "지난 20여년간 제도 확대에 따른 성과가 있었는지 실증적 분석이 선행돼야 하며 입법 목적이 달성되지 못했다면 과감히 폐지하거나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논평에서 "사후관리 요건의 핵심인 중견기업 상속 시 고용유지 의무를 100%로 완화한 점은 논란의 소지가 크다"며 "고용유지 비율을 손대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업계는 사후관리 기간 단축과 요건 완화 조치는 반기면서도 공제대상과 금액 확대 등이 빠진 데 대해 불만을 내비쳤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입장문에서 업계 숙원이던 사후관리 기간, 업종 유지 의무 완화 조치가 이뤄진 것을 환영하면서도, 고용유지 관련 급여총액 유지 방식 도입,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특례 확대가 빠진 점이 아쉽다고 밝혔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논평에서 "공제 대상과 한도 확대가 전적으로 외면된 것은 가업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인식하는 맹목적인 반기업정서에 흔들린 결과로 보여 안타깝다"며 "정부 개편안은 경제 활력 제고 취지를 달성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국회 입법 과정에서 공제 대상 확대, 공제 한도 상향에 대한 적극적인 재검토가 반드시 진행되길 바라며, 최대주주 보유 주식 할증평가 폐지, 사전 증여 활성화 등 개선 조치가 추가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입장문에서 "기업들이 요구한 내용에 비해 크게 미흡해 가업승계를 추진하려는 기업들이 규제 완화 효과 자체를 체감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최대주주 할증평가 폐지, 가업상속공제 적용 대상과 사전·사후관리 요건 대폭 완화를 추가 반영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이번 개편안은 고용·투자 위축 방지를 위해 도입된 가업상속공제 제도의 활용이 저조한 실정임을 고려해 실효성을 높이려 했다"며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자산을 양도할 경우 양도차익을 모두 합산해 양도소득세를 매기는 등 형평성 측면의 보완 장치가 마련돼 있기 때문에 이번 공제 요건 완화가 과세 형평과 조세 정의를 훼손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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