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옥의 인문학] 예술은 사기다 그리고 우리는 속기를 원한다
[이상옥의 인문학] 예술은 사기다 그리고 우리는 속기를 원한다
  • 이상옥 tEchNo 인문학 연구소 소장
  • 승인 2019.08.15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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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아티스트로 유명한 백남준 선생은 “예술은 사기다”라고 외쳤다. 이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의미의 사기가 아니라 아믐다움을 무기로 인간의 이성과 감성 등 모든 감각기관을 이용해 현혹하고 현혹당하는 모든 것들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사실 백남준씨가 선보인 비디오 아트는 처음 우리나라에 선보일 때 혹자는 경악을 하고 혹자는 어리둥절을 경험했다. 경악하는 사람은 그의 사기에 혹한 것이고, 어리둥절한 사람은 혹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사기꾼의 화려한 언변에 현혹되어 사기라는 자각도 없이 자신도 모르게 유재이탈과 같은 상태가 되어 ATM 앞으로 달려가 송금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때 그 사기꾼은 평범한 사기꾼이 아닌 한 사람의 예술가로 등극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사기 수법의 보이스피싱 전화일지라도 전화를 받아보고 사기라고 단번에 느껴져 전화를 끊었다면 전화를 걸어온 그는 평범한 사기꾼에 불과하다.

이처럼 선택받아 특별히 인정받는 표현만이 예술이 된다. 똑같은 그림이라도 누군가의 그림은 갤러리에 걸려 몇 천, 몇 억 원에 팔려나가고, 누군가의 그림은 그냥 일개 낙서에 지나지 않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다.

현대에 들어서 이런 사기에 가까운 예술 행위는 마케팅 기법에서 고객 발굴 및 확보, 그리고 지속적인 고객관리의 기법으로도 매우 유용하다. 기업의 제품이 소비자에게 선택받는 것이나, 예술품이 애호가에 선택받는 것은 결국 같은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선택이란 명제아래 명품이나 핫한 아이템들 모두 예술 작품과 다를 게 없다. 따라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 기업의 제품을 보다 예술적으로 승화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명품 기업들 대부분이 브랜드에 목숨을 거든 이유이기도 하다.

삼성과 애플의 스마트폰 차이를 기능적인 면에서 비교해 보면 삼성이 만들어 내는 제품보다 잡스의 스펙이 더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애플은 늘 인간의 믿을 수 없는 판단력에 의해 발생하는 감각에 기대 소비자를 감동하게 하고 그것이 마니아 문화를 만들어낸다. 이른바 ‘애플빠’의 탄생이 그것이다.

가격 대비 기능만 보고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은 언제든 또 다른 가성비 훌륭한 제품이 나오면 거기로 이동한다. 가격경쟁력의 차원에서 보면 중국 제품들이 이미 우리나라 제품보다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다. 제품의 사양도 우리와의 차이가 안 날 정도의 기술의 간격 차가 날로 좁혀들고 있다. 우리 제품의 생산성을 향상해 가격을 더 내리기에는 이미 한계치에 도달했으며, 가격을 무리하게 내린다 해도 가격경쟁력의 우위를 가지고 있는 중국산 제품들이 버티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 제품의 품질을 더 높여 가격을 올리자니 애플빠들의 외면이 버티고 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우리의 제품들은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 세계의 소비자들을 감동하게 해 명품으로 등극해야만 한다. 그래야 지금의 저가와 고가 사이의 어중간한 위치에서 탈출해 중국과 글로벌 경제로부터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잃고 표류 중인 대한민국 경제나 일반 개개인들의 삶에서 이제 예술을 경시하거나 국가 경제 혹은 일반 기업 활동과 개인의 소득 증대를 위한 생산 활동과는 전혀 무관한 분야로만 인식하는 폐단은 하루빨리 없어져야 한다. 예술이 생산과 제조의 분야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환경으로 사회 전체가 재편되어야 할 시점이 돌한 것은 분명하다.

그동안 우리는 서구 문명의 발달된 기술을 획득하기 위해 부단하게 덤벼들었다. 덕분에 어떤 분야에서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특히 IT분야에서는 놀라운 적응력과 응용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기술적인 발전과 획기적인 성능의 향상이 다가 아닌 시대가 되었다. 사기칠 수 있는 이미지, 브랜드가 필요하다.

​2015년 ‘밀워드 브라운Millward Brown'의 세계 브랜드 가치 순위 Top 100 2015년 보고서에 의하면 2014년에 이어 2015녕에도 여전히 IT기업들의 강세가 계속되는 가운데 2014년 구글에 1위 자리를 내주었던 애플이 구글을 큰 차이로 따돌리면서 다시 1위 자리로 복귀하는 영광을 차지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삼성은 2014년 29위에서 2015년 45위로 16단계 하락했다. 이것이 우리의 현재 모습일지 모른다. 어려운 경제 현실에서 그 해법을 기능이나 기술적인 측면이 아닌 예술적인 측면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이상옥 소장
이상옥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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