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원로배우 임동진의 해명 “악역 표도르 역할은 50년 연기인생의 대변신 카드”
[인터뷰] 원로배우 임동진의 해명 “악역 표도르 역할은 50년 연기인생의 대변신 카드”
  • 유승철 대기자
  • 승인 2022.12.07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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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파격 변신 논란일자 “배우정신에 충실해 망가질 대로 망가지겠다” 강성 발언
- ‘중의적인 의미전달 장치’ 마련한 김문 연출에 큰 기대...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작품해석이다” 엄지척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준비하고 있는 배우 임동진. 그는 현역 배우이면서 은퇴 목사이기도 하다. 그가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 전달방식은 연기와 설교였다. 그가 스토리 속의 인간으로 재탄생하면서 선과 악의 실체를 전한 것이 연기였다면, 하늘의 뜻이 땅위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기를 전한 설교는 교회의 진리였다. 윤여성 예술총감독에 따르면 그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통해 이 두 가지 사명을 다하려고 한다. (사진제공=극단 로얄씨어터)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개막(28~29일)을 준비하고 있는 배우 임동진. 그는 현역 배우이면서 은퇴 목사이기도 하다. 그가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 전달방식은 연기와 설교였다. 그가 스토리 속의 인간으로 재탄생하면서 선과 악의 실체를 전한 것이 연기였다면, 하늘의 뜻이 땅위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기를 전한 설교는 교회의 진리였다. 윤여성 예술총감독에 따르면 그는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통해 이 두 가지 사명을 다하려고 한다.

◆ 윤여성 예술총감독과 김문 연출의 "출연 압박"

연기자들에게는 각자 이미지에 맞는 단골 역할이 있을까? 사극의 임금님, 수사반장의 범인, 아침드라마의 불륜녀 등을 보면 그 배역에 자주 보이는 얼굴이 있긴 하다.

배우 임동진을 예총 서대문지부에서 만났다. 존경받는 연예인이자 기독교 교단의 은퇴 목사이기도 한 그가 연극 출연 문제로 비대면 가족회의를 열어야 했던 사연 때문.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연말 공연(28~29일 서강대학교 메리홀) 작품으로 준비 중인 극단 로얄씨어터의 윤여성 예술총감독과 김문 연출이 주인공 표도르 역에 ‘최적임자’라는 명분을 내세워 그의 출연을 강요(?)한다는 소문이 컸다.

표도르가 누구인가?

19세기 제정러시아 시절 카라마조프가 형제들의 아버지다. 하지만 인간 말종. 재산과 여자를 서로 차지하려 큰아들과 다투고, 둘째 아들은 형의 애인을 탐하는 등 막장 불륜집안을 이끄는 가장이다. 외도로 낳은 사생아까지 있다. 결국 아들의 손에 죽는 존속살인에 의해 표도르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아버지 표도르 역으로 분한 임동진. 이미 '대배우'인 그의 눈에는 물욕과 정욕이 함께 이글거린다. 탐욕의 끝은 파멸이라고 밝힌 임동진은 이번 출연을 위해 가족들의 동의를 구해야 했다. (사진제공=극단 로얄씨어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아버지 표도르 역으로 분한 임동진. '대배우'인 그의 눈에는 이미 물욕과 정욕이 함께 이글거린다. 탐욕의 끝은 파멸이라고 밝힌 임동진은 이번 출연을 위해 가족들의 동의를 구해야 했다. (사진제공=극단 로얄씨어터)

◆ 가족들과 회의 “출연 거부냐? 연기자 운명이냐?”

그러니 표도르는 평소 임동진의 역할과는 전혀 다른 인간형이다. 굳이 악역을 연기했다고 하면 1998년 KBS대하드라마 <왕과 비>의 세조 역을 유일하게 꼽았는데, 그것 또한 쿠데타로 단종을 죽이고 왕권을 차지했을 뿐이지 역사는 세조를 개혁군주로 평가하고 있다.

결국 임동진이 표도르를 연기한다면 임금님이 아닌 최악의 저질 망나니처럼 망가져야 한다. 50여년 드라마 인생에서 쌓아온 근엄하고 인자한 모습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다.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했던 실제 목사님 이미지마저 지워야 하는 탈선(脫善)도 염려해야 한다.

“고민이 컸습니다. 전문 연기자가 출연을 거부한다는 것은 무대 보이코트나 다름없기에 가족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했죠. 그래서 아내와 자식들과 상의하게 됐어요.”

그의 아내는 독립운동가이자 영화감독이었던 권혁조(예명 권철희)의 딸로 한 때 연기 경험도 했다. 딸(임예원)은 1999년 SBS드라마 <파도>로 데뷔해 2010년 영화 <황해>에서 교수부인 역으로 출연할 때까지 활동해온 연기인.

숱한 작품에서 배역들의 캐릭터를 전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왔다. 위 작품부터 KBS대하사극 '왕과 비'(1998~2000), KBS주말드라마 '달무리'(1981) 등 (사진제공=임동진)
임동진은 숱한 작품에서 관객들을 위한 메시지 전달과 시대적 캐릭터 창조를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왔다. 위 작품부터 KBS대하사극 '왕과 비'(1998~2000), 연극 '언제나 늘 함께'(2020). KBS주말드라마 '달무리'(1981) 등 (사진제공=임동진)

◆ 막장 드라마 요건을 두루 갖춘 악역 표도르

“철저한 배우 정신으로 ‘욕망의 노예’ 역할을 한번쯤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대답이 나왔어요. ‘근본이 있는 목사’라는 평가를 받아왔기에, 막장 인생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출연했을 것이라고 주변 사람들이 이해해줄 것이라는 자식들의 말에 강한 욕구가 생겼습니다.”

임동진은 미국에서 현역 목사로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아들(임영희)과도 통화해야 했다.

이번 저질인간 출연으로 “혹시 기독교 팬들에게 항의 받는 일은 없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사람은 누구나 표도르가 갖고 있는 단점을 하나씩은 갖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배역 연구를 위해 원작 소설과 영화를 두루 보고 있습니다. 표도르의 행적을 보고 이런 짐승 같은 인간이 어디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지요. 하지만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입니다. 문학의 교과서인데, 그곳에는 분명 인간이 추구해야할 참 진리가 녹아 있을 것입니다. 팬들의 불만은 거의 없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는 오히려 막장 드라마가 갖추어야 할 요건을 두루두루 갖춘 악역 표도르에 매료된 표정이다. 욕망에 의한 종말이 인생파멸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연극이 전하는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연기로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끼게 됐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출연진과 함께 한 표도르 역 임동진(앞 중앙), 뒷줄 왼쪽부터 큰아들 드미트리(28)역 윤여성, 셋째아들 알료사(20)역 김동윤, 둘째 아들 이반(24)역 오승현, 사생아 스메르쟈코프(23)역 최정필 (사진제공=극단 로얄씨어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출연진과 함께 한 표도르 역 임동진(앞 중앙), 뒷줄 왼쪽부터 큰아들 드미트리(28)역 윤여성, 셋째아들 알료샤(20)역 김동윤, 둘째 아들 이반(24)역 오승현, 사생아 스메르쟈코프(23)역 최정필 (사진제공=극단 로얄씨어터)

◆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의 변신’ 시도

별다른 잡음 없이 무대를 지켜온 지난 50여년의 연기 인생에 비추어, 연극계에서는 이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출연을 통해 임동진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는 평가도 돌고 있다.

임동진 역시 “참 진리가 심장의 박동이 되고, 영혼이 되는 변화가 될 수 있다면, 새로운 배움과 변화의 시도는 참 인생의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이번 ‘재탄생의 변신’을 위해 신예 연출가 김문과의 만남에도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연출에서 시도하고 있는 ‘중의적인 의미전달 장치’는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작품해석 방식이라는 시각 때문.

그로 인해 관객들은 도스토예프스키가 등장시킨 주인공 표도르의 업보를 보다 입체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는데 매우 적절한 표현방식을 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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