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소리꾼 장사익 사진전에 나타난 북한산의 여인
[기자수첩] 소리꾼 장사익 사진전에 나타난 북한산의 여인
  • 유승철 대기자
  • 승인 2022.03.22 16: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리꾼 장사익의 이번 추상 작품에는 제목이 전혀 없었다. 마음의 눈으로 보이는 자신의 것을 찾으라는 것일까
장사익의 눈 사진전 개관기념 음악회에서 아들 장영수의 대금 연주. 뒤쪽 왼쪽 사진이 기자가 옹이라고 이름붙인 작품이다. (사진=강위동)
16일 '장사익의 눈' 사진전 개장기념 음악회에서 소리꾼의 아들 장영수의 대금 연주. 뒤쪽 왼쪽 사진이 기자가 '옹이'라고 이름붙인 작품이다.

◆ 소나무숲 안개를 헤치며 오는 옹이와 옹이엄마

“이게 몇 년 만인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나 서촌에서 헤어진 그녀를 인사동 사진전에서 만나다니...”

그랬습니다. 20일 처음 ‘장사익의 눈’ 사진전(16~21일 인사이트프라자갤러리)을 찾았을 때 기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그녀였습니다. 마치 꿈속에서처럼, 아니면 어느 드라마의 인트로 화면이 오버랩된 것처럼 소나무 우거진 숲속 안개를 헤치며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걸어오는 그녀의 모습을 어렴풋이 보게 되었습니다.

평소 존경하던 선배 한 분이 장사익사진전 소식을 동문 단톡방에 올린 것은 17일이었습니다. 16일 개막전에 다녀오면서 휴대폰으로 찍은 작품 몇 점과 함께 “대단한 구도! 꼭 보시길 강추!” 글을 올렸는데, 그 중에 눈길을 사로잡은 사진들이 있었지요.

그 여인의 아들로 보이는 사진작품 ‘옹이’(오른쪽)와 아들과 함께 살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사진작품 ‘북한산’ 풍경(왼쪽3점).
그 여인의 아들로 보이는 사진작품 ‘옹이’(오른쪽)와 아들과 함께 그녀가 살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사진작품 ‘북한산’ 풍경(왼쪽3점).

수사관이 마치 가슴 속에 묻고 살아왔던 영구 미해결 사건의 응어리를 풀 수 있는 단서라도 찾은 듯 기자는 그 순간 멈칫 했습니다.

“그래 직접 가보자. ‘장사익의 눈’이 정확한지 현장에 가보면, 그녀가 사진 속에 있는 것인지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겠지” 하는 심정으로, 북한산 등산길에서 전화 받고 있다는 선배와 시간을 약속한 후 20일 오후 인사동 화랑을 찾았던 것이지요.

물론 가수 ‘사익오빠’는 기자가 평소 팬으로 존경하는 분이었습니다. 또한 인사동은 30여년을 경복궁 옆동네에 살면서 자주 들렀던 곳이기에 마실가듯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실제 그곳에서 만나면 왠지 어색한 분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에 말문을 열어줄 선배가 필요했습니다.

화랑 벽에는 ‘장사익의 눈’이 30년 전의 현장사건이라고 찍어온 사진들도 분명 걸려 있었습니다. 북한산 선배가 단톡방에 올린, 그녀와의 만남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 바로 그 사진들 말입니다.

기자가 북한산으로 이름 붙인 3장의 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한 사람들. 왼쪽부터 이희범 경북문화재단 대표(전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소리꾼 장사익(사진전 작가), 강화자 베세토오페라단장, 강위동 원각복지회 회장. 기자
기자가 '북한산'으로 이름 붙인 3장의 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한 사람들. 왼쪽부터 이희범 경북문화재단 대표(전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소리꾼 장사익(사진전 작가), 강화자 베세토오페라단 이사장 겸 단장, 강위동 원각복지회 회장. 기자)

◆ 북한산 골짜기 바람이 장사익 사진 속으로

다른 작품들 역시 ‘사익오빠’가 <찔레꽃> <봄날은 간다>와 같은 ‘불후의 명곡’(2월26일 KBS2 방송)을 부른 느낌 그대로, 또한 우리시대의 지성이자 천재 문학평론가인 이어령 박사가 아끼는 후배라 소개한 그대로, 소리꾼 장사익의 사진들은 인사동 화랑가에 추상사진의 새바람을 일으켰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기자의 안중에는 오직 북한산 선배가 카톡으로 보내준 두 편의 사진, 즉 기자가 임의로 이름 붙인 <옹이>와 <북한산>만 들어올 뿐이었습니다.

사진의 주인공인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30여 년 전 북경교향악단 내한 공연이 열렸던 세종문화회관에서였습니다. 기자가 공공기관 신입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 한중 수교를 위한 물밑작업의 하나로 양국은 문화교류의 물꼬부터 트려고 시도했지요.

그날 공연 후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그녀는 기자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북한산 어느 암자의 주지스님이야. 어머니는 누군지 몰라. 나는 그저 뒷방에서 혼자 자라야 했어.”

그리고는 자신의 머리인 가발을 벗었습니다. 놀랍게도 조지훈의 <승무> 싯구 그대로 ‘파르라니 깎은 여승의 머리’였습니다.

16일 전시장 개장식에서 관람객들의 요청에 의해 즉석 노래로 화답하는 소리꾼 장사익

그로부터 3달 후쯤 기자는 그녀를 지금의 서촌 세종마을 입구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물론 가발을 썼고, 전보다 화려한 옷을 입은 그녀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기자를 정확히 응시하며 말했습니다.

“딱 하나, 정말 딱 하나 이유가 있다면... 내가 혼자 키우고 싶은 아기를 갖고 싶었어. 오직 내 자식으로만...”

이후 그녀와의 연락은 두절됐습니다. 그녀의 희망대로 옹이를 낳았는지 여부는 모릅니다. 북한산 어느 암자에 사는지는 더더욱 모른 채 세월은 또 그렇게 흘렀고... 이제서야 갑자기 ‘장사익의 눈’을 통해 그녀와 아들 옹이가 인사동 화랑에 걸린 장사익 사진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날 일행이 함께 저녁을 먹는 인사동 전통식당에서 기자는 막걸리만 주문했습니다. 취기 때문이었을까요? 가슴속 옹이처럼 맺힌 사연을 아주 조금은 털어놓게 되었지요. 선배 형수님이 마침 북한산 절에 다녀오는 길에 합류하시면서 북한산 어느 골짜기에서 부는 바람까지 몰고 오셨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북한산 작품 앞에 선 관람객
'북한산' 작품 앞에 선 관람객

◆ 눈에 보이는 대로 해석하는 것이 장사익 작품

기자는 전시 마지막 날인 21일 오후 다시 인사동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작가에게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왜 작품들에 제목이 없지요?”. 작가 자신은 그 작품을 어떤 눈으로 보고 찍었는지, 기자의 시각과 비교해보고 싶었습니다.

화랑의 전시 벽면이나 안내 팸플릿 어디에도 작품 제목이 안 보였기 때문이지요. 충청도 출신 ‘사익오빠’는 대답했습니다.

“보는 사람 맴이니까요”.

그래서 기자가 <옹이>와 <북한산>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하지만 그 두 작품은 아쉽게도 작품성의 서열(?)에서 밀렸는지 관람객들에게 배포하는 사진첩에는 수록돼있지 않았습니다. 기자에게는 북한산 선배가 보낸 카톡사진이 곧 안내팸플릿이 된 셈이지요.

<옹이>는 원래 나무줄기에 박힌 가지의 그루터기를 말합니다. 비록 그녀의 아들이 어머니처럼 사생아로 태어났다 할지라도 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서 붙여본 이름이지요.

장사익의 눈 전시장 내부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장사익의 눈' 전시장 내부

<북한산> 3점은 그녀가 아들과 함께 지냈으면 좋을 법한 아름다운 산의 모습을 기대하며 붙여 보았습니다. ‘장사익의 눈’ 사진전에 등장한 몇 안 되는 채색사진 중 가장 화려한 작품입니다. 그 안에 들어서면 그녀가 암자 뒤편에서 혼자 놀아야 했던 유년시절의 외로움도 모두 사라질 것만 같은 넉넉함이 보였습니다.

장사익 대표곡 중의 하나인 <찔레꽃>을 아시나요? 1994년6월 ‘사익오빠’가 사물놀이패를 따라다니던 46세 때에 가수 데뷔곡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잠실 5단지 옆을 지나던 중 빨간 들장미 가운데 유독 풍기는 향기를 따라가 보니, 잘 보이지 않는 한 구석에 뜻밖에 하얀 찔레꽃이 피어 있었고, “이 보잘 것 없는 꽃에서 이렇게 좋은 향기가 나다니...”, 울컥하는 마음으로 쓴 곡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주지스님인 아빠의 체면 때문에 사찰을 찾는 신도들의 눈을 피해 구석에서 홀로 놀아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바램대로 옹이를 낳았다면, 옹이를 위해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찔레꽃 향기를 내고자 노력했을 것이라 기대가 되는 여인입니다.

장사익 작품전이 언젠가 다시 열린다면 그때도 그녀와 옹이가 함께 나타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