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올린 10만 원짜리와 1억 원짜리를 동일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한다고 가정합시다. 일반인들은 눈으로 보이는 바이올린 외형적 모양은 차치하고 두 바이올린 소리의 차이점을 잘 구분하지 못할 것입니다. 솔직히 대부분 똑같다고 들을 것입니다. 하지만 음악 전문가들은 다르죠. 두 바이올린의 연주 소리를 듣는 순간 소리 차이를 금방 알아챕니다. 당구 큐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 하우스큐와 커스텀큐가 외형적으로 동일하더라도 당구 프로나 동호인들이 실제 사용해 보면 큐가 당구공과 맞을 때 전달되는 타구감이나 직진성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충북 청주 옥산IC 인근에 소재한 당구 큐대 제작공장에서 만난 나연태 플라이샤크 대표의 첫 인상은 빡빡 깎은 머리 때문인지 씩씩했다.
찌는 듯한 한낮 더위에도 인터뷰 내내 밝은 에너지가 넘쳤다.
당구 큐대에 대해 묻자 일반 하우스큐와 커스텀큐의 차이점을 바이올린에 빗대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구 큐대는 길이 제한이 없다. 하지만 대체로 140~150cm 길이에 둥근 긴막대(목봉) 모양이다.
무게는 일반적으로 400g에서 600g 사이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길이 무게에 따라 당구 칠 때 차이가 난다,
무거운 큐대는 사용할 때 힘이 필요하지만 안정적인 샷이 가능하고 가벼운 큐대는 쉽게 다룰 수 있지만 정확성을 잃을 수 있다고 한다.

큐대는 크게 공을 치는 역할을 하는 ‘스틱’부문과 손잡이 역할을 하는 ‘버트’ 부분으로 구성된다.
대체적으로 스틱부문을 ‘상대’로, 버트부문을 ‘하대’로 불린다.
굵기는 스틱의 맨 끝인 ‘팁’ 부분이 일반인 남성 중지 정도 크기에서 손잡이로 갈수록 굵어지는 형태이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나무 하나를 통으로 깎아서 만드는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큐대는 막대 봉인 만큼 나무를 깎아 만드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나무 하나가 아니라 적당한 탄성과 강도를 가진 원목 여러 개를 하나로 붙여 집성목을 만든 다음 깎는 것이죠. 따라서 나무를 어떻게 접합하느냐에 따라 큐의 성능 차이가 납니다. 어찌보면 공예품 일종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나 대표는 “당구 큐대를 그냥 똑같은 막대봉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며 “당구 큐에는 공학이 숨어있고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다”고 했다.
당구공을 타격할 때 미묘하게 타구 성능을 높여야하는 기술적 성능도 큐대 제작 시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는 것이다.

나 대표는 특히 큐대를 제작하는데 공예품 만큼이나 지난한 작업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토로했다.
제작 공정이 그만큼 복잡하다는 것이다.
나무를 깎고 말리고 붙이고 또 말리고 재단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해야 한다는 게 나 대표의 설명이다.
7~8회의 도정 과정과 세세한 공예 과정까지 포함하면 대략 110가지 공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당구 큐대 하나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300평에 달하는 넓은 공장 한쪽편엔 원목들이 쌓여있고 또 공정에 맞게 이곳저곳에 놓여져 있는 10여 종의 목공용 회전선반 기계들, 건조실 등을 둘러보노라면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나 대표는 “사용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공을 정확하게 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제작 과정에서 목재, 조인트 철재 재질과 밸런스, 무게 중심 등 고려할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선 큐대 상대의 경우 공을 타격해야하는 만큼 탄성과 내구성이 우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목은 탄성 좋은 단풍나무인 컬리 메이플이 주로 사용된다는 게 나 대표의 설명이다.

나무 관리도 중요하다고 했다.
“나무를 한번 깎으면 처음엔 곧은 것처럼 보이지만 5분만 지나면 휘어져 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원목 내에서 수축이나 팽창이 일어나고 또 습도, 직사광선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죠.”
나 대표는 이런 이유에서 장마철에는 아예 작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깎는 것뿐만 아니라 나무와 나무에 본드를 붙여 집성하면서도 마찬가지로 휨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때 잘못 살폈거나 말리는 과정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을 경우 나중에 심하면 흠이 생기고 갈라질 수도 있다고 했다.
나 대표는 휘어짐 발생으로 불량 난 큐대 실물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동안 이같은 불량으로 버린 나무만 해도 정확하게 집계하지 않았지만 “금액으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하다”는 표현으로 많았음을 암시했다.
나 대표는 원목도 잘 살펴봐야 큐가 휘어지는 현상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원목의 나이테 방향까지 세심히 살펴가며 깎는다는 것이다.
나이테가 휘어져 있으면 아무리 잘 깎아도 휘어짐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집성하는 것도 제작사 마다 다를 수 있지만 원목 3개나 6개, 9개를 붙여 큐대를 제작하지만 많게는 32개까지 붙여 만든 큐대도 있다는 것이다.
플라이샤크는 27개까지 붙여 만든 게 최고라고 했다.
나 대표는 “플라이샤크가 대나무 18쪽을 붙여 만들어 특허까지 낸 제품은 탄력이 좋아 잘 팔리고 있다”고 자랑했다.
나무를 여러 쪽 붙인 집성목의 경우 한 1년간 건조 과정을 거치고 이후 한꺼번에 깎는 게 아니고 하루에 0.5㎜씩 깎고 건조시키는 작업을 반복해서 명품 수제 큐대로 완성한다고 나 대표는 설명했다.
그래야 휘지않는 좋은 제품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플래이샤크만의 독자공법인 코어 공법을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가미하고 있다고 했다.
당구 큐대 중 상대의 경우 여러 쪽을 붙인 것도 있고 안 붙어서 통으로 하는 것도 있다고 했다.
통으로 하는 경우 목재가 좋아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손잡이이자 큐를 세웠을 때 지지대 역할을 하는 하대는 눈에 보기 좋게 장식도 한다.
하대 얘기를 하던 나 대표는 갑자기 건조실로 달려가 제작 중인 하대 여러 개를 가져와 보여주면서 하대 제작 과정 이야기를 이어갔다.
원목으로는 가장 다루기 어려우면서 치유의 나무라 불리는 유창목으로 만든 것과 단단하면서 예쁜 무늬로 특수 나무에 속하는 코코볼로 만든 것도 보여줬다.
코코볼로 만든 큐대는 대를 물려줄 만큼 가치있는 무엇인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 대표는 특히 유창목과 코코볼로 만든 벚꽃 문양 600쪽을 붙인 버트 슬리브 고급 하대를 보여주며 플라이샤크만의 독자모델 중 하나라고 자랑했다.
플라이샤크가 개발한 독창적인 패턴은 20여 종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나 대표는 “당구 큐대는 예민한 장비이기 때문에 정밀하게 제작해야 해 원목을 말리고 붙이고 하는 과정에서 휨이 없음을 여러 차례 확인해야 하고 휘어지면 다시 만들어야 한다”며 “그래서 좋은 큐대 하나 만드는데 최소 3개월, 최대 6개월 걸린다”고 했다.
게다가 커스텀큐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큐여서 개인 취향에 맞는 색상 패턴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공예적 창의성을 가미해야 한다는 것.
그만큼 개인들이 소지하는 커스텀큐대는 가격이 몇 백에서 천만원대를 홋가할 정도로 비싸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연간 커스텀큐 제작량도 플라이샤크의 경우 1500개 정도이다. 한달로 따지면 평균 100여개 생산된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플라이샤크는 커스텀 큐대뿐만 아니라 ‘런웨일’ 브랜드로 당구대도 주문 제작 형태로 만들고 있다.
나 대표가 당구 장비 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은 지독한 당구인이어서다.
“대학 때 친구들이랑 집 앞 당구장 가서 당구를 처음 접하게 됐습니다. 그 당구장이 옆집 아저씨가 하는 곳이어서 자주 갔다가 당구를 배우게 됐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구장 주인인 옆집 아저씨가 당구계에서 유명한 분이었고 그 분에게 배웠다는 게 자랑스러웠죠.”
그는 외대 중국학과를 다녔지만 공부보다는 재미있는 당구에 빠졌다고 했다.
그야말로 열심히 당구를 배워서 대학 2학년 때 수원시장배라는 전국대회에서 우승까지 했다.
이게 그가 당구인으로 살게 된 계기가 됐다고 토로했다.
대학 졸업 후엔 곧바로 부산으로 내려가 당구 치면서 살았다고 한다.
“할 줄 아는 것이 당구밖에 없었고 생활비도 당구장 아르바이트하면서 벌었습니다. 그러다가 쓰러져가는 당구장을 위탁 운영하게 되면서 돈을 벌게 됐고 이를 기반으로 당구장을 차리고 당구장 사업을 하게됐습니다.”
나 대표는 당구선수이기도 하지만 한때 국가대표였다.
프로당구인 가운데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처음으로 빡빡머리를 한 당구프로로 잘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한 때 ‘당구장 부자’로도 통했다.
2010년도까지만 해도 부산에서 제일 큰 ‘BK당구클럽’이라는 대형 당구장을 36개까지 확장, 직영 운영한 경영자였기 때문이다.
한 당구장마다 당구대가 25개 이상이고 상주 직원만도 5명에 이를 정도로 커 유명했다고 한다.
그가 운영했던 ‘BK당구클럽’은 전체 당구대만 800대에 이르고 직원 250명인 중견기업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홍보지로 뿌리던 당구장 전단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당구장에는 불특정 다수가 많이 오기 때문에 당구장이 생기면 그 건물 경기가 살아요. 그래서 어떤 빌딩에서는 싸게 임대를 주기도 해 당구장을 크게 운영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죠.”
그는 “당구장을 1~2곳 운영할 때 어렵지만 당구장이 5~6곳으로 크게 늘어나게 되면 매출도 비례적으로 금방 늘어난다”며 “1년이면 직영점 한 곳을 늘릴 정도의 수익이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직영점을 늘리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 대표는 2000년대를 회상하며 “당시 전국적으로 당구장이 많았지만 당구대 수가 20개 이상을 갖춘 대형 당구장은 서울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며 “당구장 사업으로 그야말로 돈을 쓸어모으다보니 당시 당구인들로부터 시기를 많이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소상공인들이 즐비한 곳에 대형마트가 들어가면 싫어하듯 나 대표가 새로운 곳에 당구장 개설할 때면 해당 지역 당구장으로부터 반발심을 사기도 했다는 것이다.
나 대표에게도 인생 굴곡이 없었던 게 아니다.
2009년께 잘 운영하던 BK당구클럽 모두를 백여 억원대에 넘긴 후 매각대금으로 패밀리 레스토랑과 수입차 사업에 투자했으나 몇 년만에 모두 망했다.
또다시 알거지가 되다시피하니 2년 6개월 동안 송전선로 작업 인부로 일하면서 돈을 벌었다고 한다.
송전선로 작업이 길도 없는 산길을 다녀야 하는 것은 물론 다른 일에 비해 위험도가 높아 보수가 상대적으로 많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 때 벌었던 종잣돈으로 당구장 사업에 또 나섰다.
예전에 크게 했던 당구장 사업이다보니 잘 할 수밖에 없었고 부산에서 벗어나 서울 대치동에도 300평 규모의 대형 당구장을 차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예전처럼 수익이 나지 않아 나 대표는 또 당구장을 매각을 하고 그 돈으로 지금의 당구 큐대 및 당구대 제조공장을 차렸다.
그가 이 사업에 뛰어들게 된 이유도 특별히 없었다고 한다.
그냥 “당구인이니까”란 말로 웃어 넘긴다.
그가 당구선수로 생활하며 30년 동안 사용해온 경험자로 사용자 입장에서 좀 더 좋은 큐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한켠에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뭐 철저히 준비하고 차린 것 아니고 그냥 성격대로 무조건 큰 공장을 차린 거예요. 솔직히 당구 큐대 제작 기술도 없었고 목공 기계를 만질 수도 몰랐어요. 전문 기술자를 뽑아 시작할 수밖에 없었죠.”
나 대표는 직원들 다 맞춰 공장 가동을 시작했지만 집성하는 방법을 몰라 애를 먹었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집성에 대해 연구하기로 하고 큐를 다 분해해 꼼꼼히 살펴봤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중고 큐는 물론 부러진 큐까지 사서 뜯어봤다고 한다.
그동안 연구를 위해 구입한 당구 큐 개수가 셀수 없을 정도였고 이 사업을 한 지 10년 가까이 되지만 지금도 중고 큐를 구입해서 다 잘라보고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커스텀규 업체로서는 대외지명도가 중요하다.
플라이샤크도 이런 점을 감안, 마케팅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설립한 지 10년가까이 되고 공장 규모도 수위를 다툴 정도로 큰 규모이지만 나 대표는 스스로 커스텀규 제작업체로는 신생업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때문에 그동안 인터넷을 통한 일반 마케팅보다는 당구 선수나 당구동호인 등 당구 애호가를 대상으로 한 타깃 마케팅을 하고 있다.
나 대표는 “당구선수로 살았었다보니 당구 선수의 경제적 어려움을 잘 안다”며 “그래서 플라이샤크는 당구 선수한테 큐대를 제작해주거나 경제적 후원을 하는 형태로 마케팅을 해왔다”고 말했다.
한 때 프로당구 선수인 위마즈 프로를 후원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전국대회 규모 위주 당구대회에 메인스폰서로도 나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당구선수와 동호인을 막론하고 믿고 쓸수 있는 브랜드로 자리잡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현재 당구는 오락이나 유흥을 넘어 새로운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당구 관련 전문 TV 채널이 생기고 이에 따른 대기업의 후원이 줄을 잇고 있다.

당구 관련 산업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는 추세다.
과거 국내에서 다소 부정적으로 인식되던 당구가 이제는 스포츠의 한 분야로 인정받고 있다.
나 대표는 “스포츠로 변화하는 만큼 이에 대한 제품의 필요성도 늘어날 것”이라며 “앞으로 관련 용품 및 제품의 발전도 급격히 진행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분야가 성장하게 되면 그만큼 고가 장비에 투자하는 기업도 늘어나게 된다.
자연스럽게 당구인은 더 다양한 제품을 원하게 된다.
“한 매체 보도에 따르면 국내 당구 애호가가 1200만명라고 합니다. 이 중 10%인 120만명이 대대 당구대에서 칩니다. 이들은 주로 개인큐를 사용하는데 1%의 동호인만 확보해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나 대표는 개인큐의 경우 내구성 제품이다 보니 오래 사용할 수도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한 5년쯤이면 교체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예측했다.
“저는 당구선수로서 선수가 만드는 믿을 수 있는 진짜 1등 제품, 당구 큐대로서 차별화하고 최고인 제품을 한번 만들어보겠다는 게 목표입니다.”
상호를 왜 ‘플라이샤크’라고 했느냐고 묻자 나 대표는 이같이 말했다.
“상어는 헤엄쳐야 하는데 ‘플라이샤크’ 뜻은 상어가 날다는 것 아닙니까. 개념을 바꿔보자는 것입니다.”
그는 당구대 브랜드인 ‘런 웨일’도 고래가 헤엄치는게 아니라 달려보자는 형식으로 개념을 달리하자는 뜻을 담아 작명했다고 설명했다.
나 대표는 “개념을 달리하자는, 즉 혁신하자는 것”이라며 “당구 큐대 제작에도 혁신을 히기 위해 무척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당구 선수였기 때문에 여타 커스텀큐 제작회사 보다 잇점이 많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다른 큐 제작사는 큐대 테스트를 전적으로 외부 선수에게 맡기지만 플라이샤크는 외부 선수 의견도 받지만 자신이 직접 테스트하는 만큼 피드백도 빠르면서도 좀 더 세세히 제작에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이 플라이샤크가 ‘진짜 1등 제품’을 만드는데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