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은 인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용인 미르포레스트 김영삼 셰프의 첫 마디는 음식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그대로 보여준다.
음식이 누군가에는 생계를 위한 단순한 한 끼일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취향으로 치부될 수 있지만 그에게는 남다르다.
김 셰프가 말하는 음식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이며 삶을 대하는 방식이다.
그의 삶에서 이는 그대로 드러난다.
그가 일하는 곳은 용인 미르스타디움 내 구내식당인 ‘미르포레스트 레스토랑’이다.
이 레스토랑은 용인특례시가 문화체육시설인 용인미르스타디움에 입주한 관공서와 기관 직원들이 점심식사를 위해 주로 승용차를 이용해 주변 상가로 이동해야 하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개설한 곳이다.
약 76.2평(251.37㎡) 규모로 한꺼번에 120여 명이 식사를 할 수 있다.
용인미르스타디움에는 삼가동주민센터를 비롯해 용인시체육회·장애인체육회와 종목단체, 용인시축구센터, 용인도시공사, 용인시차량등록사업소, 상상의숲, 장난감도서관 등의 기관 사무실이 운영 중이다.
상주 인원만도 평일 기준 253명이다. 휴일에는 어린이를 위한 공간인 '상상의 숲'을 찾은 이들이 많아 통상 1600여 명이 이곳을 방문한다고 봐야한다.
그는 이들의 한끼나마 이 곳에서 한식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하는데 정성을 다하고 있다.

사실 김 셰프의 탄탄하고 화려한 이력을 보았을 때 성수나 홍대 같은 힙한 장소에서 파인다이닝의 오너셰프다.
김 셰프는 이탈리아(남부)협회부설 아카데미 명예학사학위를 취득하고, 지중해 이태리몰타 조리명인 기자작위를 수여 받았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2023 지중해 이태리몰타’ 한식 오리엔탈부분 최고상 수상, 2024~2025 연속 동일 협회 올해의 셰프 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글로벌 셰프다.
국제챌린지컵 국제요리대회의 심사위원도 수년간 맡아오는 등 요리계에서 그의 입지는 단단하다.
이처럼 국제 활동도 활발히 진행했던 그를 용인 미르스타디움 구내식당에서 만날 수 있다니 놀랄 수밖에 없다.
한식과 분식을 중심으로 평범한 일상을 살면서 미르스타디움을 찾는 가족들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는 것으로 행복을 찾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것을 해 드리는 것으로 좋아요. 돈 많이 벌고 그런 것도 좋지만 저는 사람들의 ‘끼니’가 맛있게 이뤄지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김 셰프는 “진심을 다 해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것에 더 의미를 두려고 한다”고 했다.
밥과 반찬을 잘 드리는 것으로 좋은 일 많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말이면 직접 뽑은 우동 육수, 수제 돈가스, 손으로 만든 소스와 육수, 50kg이 넘는 떡으로 만드는 떡볶이가 테이블에 오른다. 가격은 낮지만 손은 결코 가볍지 않다.
김 셰프는 “항상 음식은 더 해주고 싶다”며 “하지만 이 가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그가 셰프의 길로 들어선 것은 우연히 들른 작은 분식집에서부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하던 시절, 대학 진학을 해야할지 말아야할 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들른 작은 분식집에서 그의 인생은 방향을 바꾼 ‘인생만두’를 만났기 때문이다.
30년 넘게 만두만 빚어온 장인의 손에서 나온 음식 만두. 모양도, 맛도 놀라웠다.
요리에 큰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었던 그에게 그 날 먹은 만두는 감동 그 자체였고, 그를 요리의 길로 이끌었다고 회고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눈을 감으면 만두를 빚는 손동작이 떠올랐고, 집에 돌아와서도 머릿속엔 만두 생각뿐이었어요. 정말 말도 안되게 맛있었던 만두였습니다. 인생만두를 만난 것이 저에게는 행운이었던거요.”
그렇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던 그 만두를 만들면서 요리를 시작하기로 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바쁘고 고된 시간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지만 요리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 열정은 곧 결과로 이어졌다.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 그는 가게를 맡을 위치까지 올라섰고, 하루 매출 140만 원을 올리던 시절을 경험했다.
1990년대 중반 만두 하나로 대기업 과장 월급에 버금가는 매출을 올리던 때 그에게 ‘요리로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고 한다.

군 복무 중에도 요리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간부식당으로 배치됐고, 제대 이후에는 한식, 분식, 고깃집 등 다양한 현장을 오가며 실력을 다졌다.
이후 프랜차이즈 본사에 입사해 메뉴 개발 팀장으로 일하며 치킨, 분식, 브랜드 메뉴 개발까지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이런 풍부한 그의 이력은 한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의 요리는 언제나 ‘현장’에서 출발해 ‘사람’으로 돌아온다는 것.
김 셰프의 전문성이 본격적으로 빛난 시기는 반찬 산업이 성장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반찬 전문 기업, 단체급식, 요양시설 급식을 거치며 ‘매일 먹는 음식’의 무게를 배웠다.
사람들이 매일 먹어야 하는 반찬, 그 반찬에는 정성과 좋은 재료가 필요하다는 것은 마음에 새기게 했다.
그러던 중 고급 요양시설에서의 경험은 그의 요리 철학을 결정적으로 바꿔 놓았다.
그는 어느 날 아침 요양 시설 앞에 세워진 구급차를 보며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 삶의 끝자락에서 유일한 즐거움이 식사인 사람들. 그분들이 드시는 한 끼가, 어쩌면 마지막 기억일 수도 있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김 셰프는 그날 이후 음식에 타협하지 않게 됐다고 한다.
조미료 사용을 줄이고, 육수를 직접 내고, 재료의 기본을 지키는 일 등이 선택이 아니라 태도였다는 것이다.

김 셰프가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은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다.
그가 일하는 미르포레스트 레스토랑에 한 번 와서 맛본 사람들이 구내식당 메뉴에는 없던 ‘도시락’을 주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구내식당을 찾아 김 셰프의 간단하지만 정성 어린 음식들을 맛본 이들의 만족감이 ‘도시락’ 주문으로 이어진 것이다.
소규모 단체, 기관, 업체 등 다양한 고객들의 도시락 주문이 생기면서 김 셰프는 도시락 제작 및 납품도 진행하기로 마음 먹었다.
시작은 올해 설 명절 연휴 이후로 잡고 있다.
“사람을 위해 에너지를 만드는 일, 그게 셰프의 일이잖아요.”
김 셰프가 도시락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김 셰프는 협회 활동과 지자체 협업을 통해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요리, 공공 행사를 위한 음식 기획 등 ‘함께 잘 먹는 방법’도 고민한다.
아직 중학생인 아들이 같은 길을 선택하겠다고 했을 때도 그는 강요 대신 지지를 했다고 했다.

김 셰프는 이미 도시락 다음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 속에서 요양식과 이동급식 시장은 피할 수 없는 미래라고 보는 것이다.
그는 ‘싸게, 대충’ 만드는 음식에 문제의식을 느낀다고 했다.
단가는 현실이지만 정직함까지 포기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올해 하반기를 목표로 요양식과 일반식을 함께 아우르는 공장 설립을 준비 중인 것도 그 연장선이다.
김 셰프는 만두 하나에 반해 시작된 요리 인생은 이제 어르신의 식탁과 지역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