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부터 블로그. SNS, 월간지 등에 ‘이원섭의 통통마컴’이라는 제목으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MPR) 글을 써오다가 2024년 말께 멈췄다. 인공지능(AI) 세상이 되면서 적응이 어렵기도 했지만 나보다 수십억 배는 뛰어난 AI를 능가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 그리 결정한 것이다.
원래 난 ‘레이트 어답터(Late Adopter)’적인 성향이 있어 신문물(?)에 대한 검증과 적응력이 생긴 다음에야 받아들이는 게으른 경향의 소유자다. 지난 몇 년간 AI의 여러 활용사례들을 보며 나름대로 쓸모있고 유익한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아주 흔한 말로 ‘잘 쓰면 이기, 못 쓰면 흉기’라는 말도 떠 오른다.
내 주위에는 AI를 정말 잘 쓰는 사람들이 많다. 학자, 예술가, 기술자, 법률가, 교육자, 작가 등 이제는 많은 구독료를 내며 없으면 일을 못하는 정도가 됐다. 때로는 보조자로서 비서의 역할을 해 주기도 하고 모자라는 부분의 코칭도 해 준다. 정말 활용도, 효율 최고의 이기가 아닐 수 없다.
한 지인은 지난 2년 동안 국내외 인공지능 도서 수십권을 독파하며 전문가 수준에 올라서 일인 출판사를 할 정도의 경지에 올라섰다. 이제는 아마존 등 글로벌 출판을 기획할 정도로 활용도 1000퍼센트의 전문가가 됐다.
그런데 이 선생 왈, “어느 순간부터 자기가 스스로 생각을 안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니 “생각이 귀찮아 졌다”고 한다. 파스칼의 명언,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존재감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파스칼의 명언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마음은 이성이 결코 알지 못하는 자기만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수준까지 비약할 수 있다. AI가 인간의 마음을 살살 갉아먹으며 자기도 모르는 어느 순간에 마음은 없어지고 데이터, 이성 만의 가득한 살벌한 세상에서 서로 프롬프트 능력 경쟁만 하는 사회를 맞닥뜨릴 수도 있다.
AI에게 프롬프트를 던지면 불과 몇 초만에 답을 얻는 편리함에 익숙하다 보니 굳이 생각을 안하게 되고 이런 습관이 몇 년간 반복 지속되다 보니 생각없음이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나도 이 원고를 열흘넘게 붙잡고 낑낑대고 있다. AI에게 내 원하는 기획과 틀을 주고 ‘워크투데이’에 기고할 원고이니 글을 써달라고 하면 불과 몇 분만에 훌륭한 글을 써준다는 걸 안다.
하지만 이 글은 내가 보고싶은 글이 아니다. 물론 나의 필체나 감각적인 감성을 더 넣어 내가 다시 쓰면 어느정도 나의 글이 되기는 하지만 난 거부감이 있어 이렇게 하고 있지 않다. 기계 냄새가 싫기 때문이다.
평소 생활이나 학업, 회사 업무에서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지나친 의존을 주의해야겠다. 생성형AI를 남용하면 기억력, 집중력, 학습 효과 등 전반적인 두뇌 활동이 감소한다는 연구 발표가 있다.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디어 랩의 연구에 따르면, 학습 과정에서 생성형 인공지능을 사용하면 두뇌 활동이 저조해지고 학업의 효율과 결과가 나빠질 수 있다고 한다. 연구에 따르면 54명의 20대 실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생성형 인공지능이 학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비교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아무 도구 없이 에세이를 쓰는 그룹, 인터넷 검색만을 활용 그룹, 챗GPT를 사용하는 세 그룹으로 나뉘어 20분간 에세이를 쓰는 과제를 진행했다.
연구진은 에세이를 쓰는 실험 참가자들의 뇌파를 측정하고 교사가 직접 에세이를 평가하는 방식 등으로 참가자들의 학업 결과를 분석한 결과 아무 도구 없이 에세이를 쓰는 경우에 집중도나 학업 결과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측정한 뇌파도 가장 활발했으며 교사들이 채점한 에세이 점수도 가장 높았다는 것이다. 챗GPT를 활용한 그룹은 가장 낮았고 인터넷 검색을 활용한 그룹이 중간이었다.
연구진은 이를 두고 ‘인지적 빚’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생성형AI를 사용하면 지금 당장의 인지 자원은 아낄 수 있지만 인지력이 떨어지는 등의 부정적인 파급 효과가 올 수 있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내가 과거 강의할 때 자주 했던 말이 있는데 공자의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知之爲知之(지지위지지) 知爲不知(지위부지) 是知也(시지야)”다. 그 뜻은 “아는 것을 안다고 하는 것,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모두 아는 것이다”라는 뜻이라.
이 말은 AI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생성형AI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 않는다. 모르는 것을 잘못되게 만들어 내는 것을 한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AI의 답을 맹신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이 거짓말쟁이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모르는 것을 정확히 구분하고 이를 모르겠다고 말하는 인간과는 달리 답을 해야 한다는 기계적 꾸밈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커뮤니케이션 분야에 '메라비언의 법칙(The Law of Mehrabian)'이 있다.
UCLA의 메라비언(Albert Mehrabian) 교수가 1971년에 발표한 저서 'Silent Messages'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인간이 커뮤니케이션할 때 언어적 요소(Verbal, 대화의 내용, 단어, 문장 등)가 7%, 청각적 요소(Vocal, 목소리 톤, 빠르기, 크기, 억양 등)가 38%, 시각적 요소 (Visual, 표정, 시선, 자세, 제스처, 태도 등)가 55%를 차지한다는 이론이다.
굳이 이 이론을 따르지 않더라도 실제 일상 커뮤니케이션에서 누구나 다 느꼈을 것이다. 눈도 안 맞추고 대화를 한다거나 상대가 못 알아듣는데도 엄청 빠르게 말한다거나 하면 화자나 청자의 소통력이 반감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내용과 멋진 수사를 한다해도 화자의 태도가 진솔하게 보이지 않는다면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빵점이다.
커뮤니케이션 방법 중에 넌버벌 커뮤니케이션(Non-verbal communication, 비언어적 의사소통)이 있다. 이는 말의 내용이 아닌 몸짓, 표정, 시선, 음성 톤 등 언어 외적인 수단을 통한 내용을 전달하는 행위이다.
메라비언의 법칙처럼 커뮤니케이션에서 메시지 전달의 대부분을 비언어적 요소가 좌우한다는 법칙과도 일맥상통한다. 즉, 말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전달하는 내용을 표현(시각적, 청각적 요소)을 통해 상대와의 교감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영국의 세계적인 공연 축제,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페스티벌에 참가해 유명해진 우리나라 코미디 그룹 ‘옹알스’가 바로 이 넌버벌로 성공한 사례이다. 과거 TV 개그 프로그램에서 이름을 알렸으나 국내 개그시장이 불황을 맞자 과감히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 성공을 거둔다. 그들이 언어도 안통하는 영어권에서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넌버벌 커뮤니케이션, ‘Babbling Comedy The perfordian (performance + comedian) Show” 라는 이름으로 국내 최초로 애딘버러 페스티벌에 참가한 옹알스는 Babbling(어린아이 옹알이를 뜻하는 말)이란 이름으로 말이 필요없는 마술, 기예 등을 통한 웃음을 전달하는 퍼포먼스 위주의 코미디를 선보여 깊은 호응을 받는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그냥 눈으로 보는 대로, 마음으로 느끼는 대로 그냥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글로벌 퍼포디언들이었기에 타국의 언어권에서도 통해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AI가 넌버벌을 이해할까? 유형의 데이터가 아닌 무형의 데이터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람의 표정, 몸짓, 어조, 기분좋음, 비통 등 비언어적 무형의 데이터를 완전히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AI는 상황과 맥락을 깊이 이해해야 하는 인간 수준의 뉘앙스 파악에는 여전히 인간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AI는 인간 보조자로 활용해야 한다. 반복적인 업무를 관리하고 방대한 정보를 분석하며 창의적인 과정까지도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며 이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이다. AI가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을 증폭시키지만 인간다움을 대체할 수는 없다. 인간의 정체성까지 대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