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특허권, 등록권이냐 무효권이냐
[칼럼] 특허권, 등록권이냐 무효권이냐
  • 배재광 국가혁신생태계포럼 공동의장
  • 승인 2026.08.31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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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혁신생태계포럼 제공
국가혁신생태계포럼 제공

지식재산처장에게 보내는 여섯 가지 공개 제안

2025년 10월 1일 특허청은 국무총리 소속 지식재산처로 승격됐다. 지식재산처는 초고속심사, 기술유출 수사, K-브랜드 보호, 지식재산금융(Intellectual Property Finance) 확대를 성과로 제시한다. 방향은 맞다. 그런데 그 전에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등록된 특허는 정말 법률이 부여한 권리인가?

세계지식재산기구(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 WIPO)의 ‘세계지식재산지표 2025’에 따르면 한국은 2024년 인구 100만 명당 거주자 특허출원 3,783건으로 세계 1위다. 일본의 1,913건보다 거의 두 배다. 특허등록증이 부족한 나라는 아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등록된 권리가 시장에서 발휘하는 힘이다.

특허의 가치는 종이가 아니라 강제할 수 있는 힘에서 나온다. 청구범위에 적힌 대로 타인이 쓰지 못하게 하는 배타적 권리(Exclusive Right), 침해했다면 그로 얻은 이익에 상응하는 대가를 물게 하는 손해배상이다. 2012년 8월 2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정의 애플·삼성 쌍방 배상액은 6,500만 원이었다. 같은 날 미국 배심의 평결은 10억 4,934만 달러였다. 약 1만 8천 배였다. 물론 소송물과 권리 유형, 절차가 달랐다. 그 다름이 바로 논점이다. 한쪽에서 특허는 시장의 운명을 가르는 권리였고, 다른 한쪽에서는 등록증과 유지료 고지서만 남겼다.

이제 지식재산처가 답할 차례다. 특허를 지킬 것인가, 특허제도를 지킬 것인가. 이에 지식재산처장에게 여섯 가지를 공개 제안한다.

권리를 권리답게

제안 1. 청구범위가 약속한 배타적 권리를 실제 권리로 만들라

특허는 발명을 공개하는 대가로 국가가 일정 기간 배타권을 부여하는 약속이다. 명세서와 청구범위에 적힌 권리가 실제 시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 약속은 완성되지 않는다. 처장은 ‘미국 수준의 보호’를 구호가 아니라 측정 가능한 제도로 제시해야 한다. 침해금지, 증거 확보, 손해액 산정, 무효심판과 침해소송의 예측 가능성, 사건 처리기간을 각각 어떤 수준까지 바꿀 것인지 일정표를 내놓아야 한다. 형식만 따라가는 무늬만 제도개선은 중단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삼성전자 고위 임원의 이메일이 재판에서 그대로 현출되었지만 서울에서는 전혀 제출되지 않았다. 디스커버리 제도를 베낀다고 지식재산권이 그대로 따라오지 않는다.

현행 특허법은 고의적인 특허침해에 대해 법원이 인정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액을 정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최대 5배는 자동으로 적용되는 정액배상이 아니다. 조문이 있다는 사실과 권리자가 실제로 구제받는다는 사실은 다르다. 지식재산처는 승소율, 인용 손해액, 증거제출명령, 사건기간을 권리자 규모별로 공개해야 한다. 등록 건수보다 행사 가능한 권리의 비율을 정책 성과로 삼아야 한다.

제안 2. 국가가 먼저 등록특허의 지위를 존중하라

국가가 부여한 권리라면 국가가 먼저 존중해야 한다. 공공조달에서 특허 적용 제품은 우수조달물품 신청경로 중 하나지만, 특허 보유만으로 지정이나 구매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통관 단계에서도 등록 특허권은 이미 관세법상 국경조치의 보호대상이고, 권리자는 증거와 담보를 갖춰 침해의심물품의 통관보류를 요청할 수 있다. 제도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권리자가 실제로 쓸 수 있는 하나의 절차로 연결되어 있느냐가 문제다.

조달 전 권리확인, 정부·공공기관 또는 제3자의 침해 신고, 기관 간 조사와 시정, 수출입 단계의 통관보류까지 권리자가 어디에 신청하고 얼마 만에 어떤 답을 받는지 한 장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국가가 자신의 등록증을 가장 먼저 가볍게 여긴다면 민간에 권리 존중을 요구할 수 없다.

숫자가 아니라 가치를 심사하라

제안 3. ‘정부향 좀비 특허’를 끊어라

정부지원과 사업평가가 특허의 출원·등록 실적에 결합되면 특허는 시장이 아니라 정부를 향하게 된다. 타인의 실시를 배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원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출원하는 유인이 생긴다. 필자는 이를 ‘정부향 좀비 특허’라고 부른다. 등록증은 살아 있지만 시장에서 행사할 이유와 능력을 잃은 특허다.

지식재산처는 출원·등록 건수를 자격이나 성과로 사용하는 정부사업을 전수 공개해야 한다. 그 기준을 기술이전, 실시·라이선스, 해외 권리화, 실제 매출과 분쟁에서의 생존력으로 바꿔야 한다. 동시에 출원료와 연차등록료 등 수수료 구조가 숫자 중심 정책을 강화한다는 의심에도 답해야 한다. 수수료 수입이 정책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출원 1위는 성과가 아니라 점검의 출발점이다.

제안 4. 빠른 심사보다 좋은 심사를 평가하라

지식재산처는 수출기업과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바이오(Biotechnology) 창업기업을 위한 1개월 초고속심사를 성과로 내세웠다. 속도는 중요하다. 그러나 빨리 부여한 권리가 뒤의 무효심판과 소송에서 흔들린다면 빠른 심사는 빠른 불확실성이 된다.

청구항 수 개를 하나로 하거나 수 개의 기술을 하나의 청구항으로 하는 방식의 심사로는 어떤 아이디어나 기술도 특허권 등록이 오히려 발명자의 권리행사에 걸림돌로 작용할 뿐이다. 혁신의 결과는 박제화된 명세서로 전환될 뿐이다.

심사 품질의 기준을 등록까지 걸린 시간에서 등록 후의 생존으로 옮겨야 한다. 청구범위의 명확성, 무효심판에서의 유지, 해외 특허 패밀리(Patent Family)와의 정합, 실제 실시와 거래, 분쟁 결과를 심사에 되돌려야 한다. 심사관의 기술 전문성과 산업 이해를 높이고, 특허심판원과 특허법원의 결과가 심사기준에 환류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빨리 만든 권리가 아니라 오래 버티는 권리가 좋은 권리다.

특허제도 자체를 심판대에 올려라

제안 5. 권리를 보장할 수 없다면 폐지·대체까지 검토하라

우선할 일은 특허제도를 완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명세서대로의 배타권을 끝내 보장할 수 없다면 특허제도의 존치 자체를 논의해야 한다. 출원자에게 발명의 공개와 비용을 요구하면서 침해를 막을 수단을 주지 못한다면, 발명자와 국가 사이의 약속은 깨진다.

그 경우 영업비밀(Trade Secret)과 부정경쟁행위(Unfair Competition) 규율로의 대전환도 검토해야 한다.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차목은 거래과정에서 제공된 아이디어의 목적 외 부정사용을, 파목은 상당한 투자와 노력으로 만든 성과의 무단이용을 규율한다. 제14조의2는 손해액 산정·추정 규정을 두고, 고의적인 차목 위반과 영업비밀 침해에는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도 허용한다. 이 제도가 특허를 당장 대체한다는 뜻은 아니다. 요건을 간결하게 하고 증거 확보와 손해배상을 실효화하여 대체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검증하자는 제안이다. 특허제도 폐지는 결론이 아니라 제도의 완결성을 묻는 시험이다.

제안 6. 국회와 민간이 함께하는 공개 심판대를 만들라

이 문제는 지식재산처 혼자 해결할 수 없다. 국회, 법원, 조달·관세 당국, 발명자, 스타트업, 대학·연구기관, 대기업, 변리사와 변호사가 함께 특허제도의 전 과정을 검토해야 한다. 민·관 대토론회를 열고,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상설 포럼으로 이어가야 한다.

토론의 자료도 공개해야 한다. 등록특허의 실제 행사율, 무효와 침해소송의 결과, 손해배상액, 조달과 통관의 집행, 정부지원과 출원 실적의 연계를 같은 표 위에 놓아야 한다. 그 위에서 개정 과제, 담당기관, 이행시점을 공개하라. 답을 미리 정한 토론회가 아니라 특허제도의 존폐까지 열어 둔 토론이어야 한다.

지식재산처장에게 요구하는 것은 새 사업 몇 개가 아니다. 한국은 이미 인구 대비 특허출원 세계 1위다. 이제 물어야 할 것은 등록된 권리 하나가 시장에서 얼마만큼의 배타성과 교환가치를 갖는가, 국가가 스스로 그 권리를 지키는가, 작동하지 않는 제도를 바꿀 용기가 있는가다.

아이디어와 특허권을 지킬 것인가, 특허제도를 지킬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제도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권리를 지키지 못하는 제도를 지키는 데 국가의 이름과 국민의 비용을 더 쓸 이유는 없다.

배재광 국가혁신생태계포럼 공동의장(벤처법률지원센터 대표)
배재광 국가혁신생태계포럼 공동의장(벤처법률지원센터 대표)

 

(배재광 벤처법률지원센터 대표, 국가혁신생태계포럼 공동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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