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 2년이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미래라고 선언했다.
정작 정책은 인간에게 얽혀 한치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현 청와대 인공지능 수석은 지난 3월 BTS 공연에서 통신 3사들이 트래픽에 대비해 망증설에 나서자, 넷플릭스 등을 겨냥하여 망중립성(Net Neutrality)에 반하는 견해를 밝혀 논란이 됐다. 현재 오픈AI, 클로드 사용으로 트래픽이 급증하고 있다. 누구에게 비용을 부과할 것인가?
정부도 AI수석도 독파모의 실패를 자인해야 길이 보인다. ‘모두의 AI’가 ‘모두의 좀비’가 되지 않도록 청와대와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

정국의 쟁점에 대해 인공지능이 어떤 답을 내 놓을까? 대법관 임명 건으로 정치권력과 사법부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지난 주에는 연수원 동기이기도 한 중수청장 후보자가 십자가 밟기로 고백했다. 삼권분립을 통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보장받은 사법시스템이 정치권력의 도전에 직면했다. 위태롭다.
1987년 국민들은 헌법적 결단을 내렸다. 사법부의 독립과 국가 형사사법시스템을 헌법에 명시했다. 사법부와 형사사법의 최종 목적, 이를 보장하기 위한 사법부와 형사사법의 최종 형태는, ‘처벌이 아니라 설득이다’ ‘다툼이 아니라 화해다’ ‘응보가 아니라 회복이다’ ‘검찰의 수사와 재판의 과정은 진실의 발견의 과정이면서 사회적 화해의 과정이다. 헌법 정신은 원고와 피고, 피해자와 피고인 모두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그런 재판은 재판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법원이 헌법이 요구하는 재판을 할 능력과 의사가 있다면 나는 1987년 헌법 제정에 동의한 국민들을 대신해서 제미나이에게 다음을 묻겠다.
‘네가 1987년 헌법이라면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에 무슨 답을 할거야?’
"제 안에 '재제청'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한국사회는 강한 얽힘이 있는 사회다. ‘탱크데이’도 비난 받고, ‘암살자(들)’도 비난의 대상이 된다. 자기 검열이 일상화됐다. 그런데 이런 사회에서 ‘혁신’을 일상으로 주장한다. 위험한 일이다. 혁신은 존재가 위험을 부담하는 과정이다. 자산축적의 최종형태를 ‘아파트’로 결정한 사회가 ‘혁신’을 부의 생성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은 모순이다.
인공지능(AI) 3대 강국이나 독파모를 국정 목표로 설정하는 것은 신기루다. 이미 시작하기도 전에 어떤 노력으로도 불구하고 도달할 수 없는 것이 결정되어 있는 불능한 목표다. 누가 이를 정하는가? 그들은 왜 국정 목표를 설계해 보지도 않고 정하는가?

독파모에 참가하고 열광하는 자들의 면면을 보면 나라가 보인다.
SK, LG그룹, KT 등이 열광한다. 독파모는 사적인 비용을 사회적 비용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파멸한 자신들의 AI 사업을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보기 때문이다. 일부는 소버린AI를 주장한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유신시대의 유령이 버젓이 혁신의 옷을 입고 나타났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자신의 근거로 삼는 자들이 동시에 주장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모두의 창업은 모두의 좀비가 되는 첩경이고, 모두의 아이디어는 모두가 공유하는 아이디어, 모두의 AI는 모두가 사용하지 않는 AI일 것이 자명(?)하다. 누가 이재명 대통령의 맑은 눈을 가리는가.
재제청의 요구가 국회 동의권을 대체할 수 있는가.
2026년 10월, 대통령의 거침없는 판단을 가리는 모오든 껍데기는 쇠붙이와와 함께 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