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성 단백질의 뭉침 억제하고 이미 생긴 섬유의 독성도 낮춰
알츠하이머 생쥐에서 뇌 속 단백질 축적 약 53% 감소·일부 기억 기능 개선
질병 단백질의 해로운 뭉침을 조절하는 단백질 기반 신약 개발에 활용 기대

KAIST 공동연구진이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원인 물질로 꼽히는 아밀로이드 베타의 비정상적인 응집을 억제하고, 이미 형성된 단백질 덩어리의 독성까지 낮추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
유전자 조절에 관여하는 아연집게 단백질을 활용한 것으로 알츠하이머병 생쥐 실험에서 뇌 속 단백질 축적과 염증 반응을 줄이고 일부 인식 기억 기능을 개선했다.
KAIST는 화학과 임미희 교수 연구팀이 전북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기초과학연구원과 공동으로 알츠하이머병 관련 단백질의 응집과 독성을 조절하는 새로운 원리를 규명했다고 5일 밝혔다.
알츠하이머병은 뇌에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되는 것이 주요 병리적 특징 중 하나다.
이 단백질이 서로 뭉쳐 형성하는 독성 응집체는 신경세포에 손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단백질이 독성 섬유로 성장하는 과정을 차단하는 동시에 이미 형성된 섬유의 유해성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연구에 활용한 물질은 DNA와 RNA를 인식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아연집게 단백질(Zinc Finger Protein)'이다.
연구진은 이 단백질의 표면이 다른 분자와 결합할 수 있다는 특성을 이용해 질병 관련 단백질을 직접 제어하는 방안을 고안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실험을 통해 아연집게 단백질의 특정 영역인 'ZF2-4'가 아밀로이드 베타의 응집에 중요한 부위와 직접 결합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결합은 아밀로이드 베타가 길고 단단한 독성 섬유로 성장하는 것을 억제하고, 상대적으로 세포에 덜 해로운 형태의 응집체가 만들어지도록 유도했다.
이미 형성된 아밀로이드 베타 섬유에도 효과가 나타났다.
ZF2-4를 처리하자 기존 섬유가 짧고 가느다란 조각 형태로 바뀌었으며, 이에 따라 세포에 미치는 독성도 감소했다.

단백질의 응집을 사전에 막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 응집체의 유해성까지 낮출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연구진은 치료용 단백질이 뇌에 도달하도록 전달 기술도 적용했다.
일반적으로 뇌의 혈액-뇌 장벽(BBB)은 외부 물질의 유입을 차단해 치료용 단백질이 통과하기 어렵다.
연구팀은 장벽 통과를 돕는 분자를 ZF2-4에 결합해 뇌 전달이 가능하도록 설계한 'ZF2-4-P9'를 개발했다.
알츠하이머병 특징을 보이는 생쥐에 이를 투여한 결과, 대뇌피질과 해마에 쌓인 아밀로이드 베타 침착량은 대조군보다 각각 약 53% 줄었다.
기억과 학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마에서도 단백질 축적이 감소한 것이다.
뇌 면역세포인 미세아교세포의 과도한 활성화도 완화됐다.
대조군과 비교해 미세아교세포 활성화 정도가 대뇌피질에서는 약 29%, 해마에서는 약 50% 감소했다.
미세아교세포는 뇌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만 지나치게 활성화되면 염증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행동실험에서는 생쥐가 익숙한 물체와 새로운 물체를 구별하는 인식 기억 능력이 개선됐다.
다만 다른 기억·학습 검사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개선이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성과는 동물실험 단계에서 도출된 만큼 실제 치료제로 개발하려면 사람을 대상으로 한 효능과 장기 안전성 검증이 필요하다.
임미희 교수는 “유전자 조절 도구로 알려진 아연집게 단백질이 질병 유발 단백질과 직접 결합해 병적인 응집 과정을 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 원리를 바탕으로 특정 질병 단백질을 표적으로 삼는 새로운 단백질 기반 치료제 설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에 지난 9월 30일 온라인 게재됐다.
이번 연구는 아밀로이드 베타를 제거하는 기존 접근과 달리 단백질이 뭉치는 방식 자체를 조절하고, 이미 생성된 응집체의 독성까지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유전자 조절에 쓰이는 단백질을 치료용 분자로 전환하고 뇌 전달 기술까지 결합했다는 점에서 차세대 알츠하이머 치료 전략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