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ypoglycemia(타이포글리세미아)'는 인간이 단어 속 내부 글자의 순서가 뒤섞여 있어도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만 제자리에 있으면 문장을 쉽게 읽어낼 수 있다는 단어 우월성 효과(word superiority effect)라는 착시 현상을 말한다. 이는 단어를 인식할 때 개별 문자의 집합으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단어의 총체적 이미지로 인식하게 된다는 논리이다.
아래 두 그림은 이 같은 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첫번째 그림은 미국 케임브리지대학교의 단어 순서 효과 실험이라고 잘못 알려진(사실은 1976년 노팅엄 대학교의 그레이엄 롤린슨(Graham Rawlinson) 박사 과정 논문에서 다룬 내용인데 와전됐다고 한다) 내용인데 예문의 단어 글자 순서가 뒤바뀐 엉터리라도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만 맞으면 뜻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사람의 두뇌가 글자를 하나씩 해독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를 통째로 하나의 이미지나 전체적인 맥락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대학생이나 직장인은 그림에 있는 문장을 거침없이 읽고 이해할 수 있지만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들은 그렇지 못하고 틀린 글자들을 정확히 가려낸다. 하지만 모든 단어의 순서를 무작위로 섞으면 시각적 인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똑같이 이해가 어려워진다.
짧은 단어(3~4글자 이하)는 바꿀 글자가 거의 없고 문맥과 문장 구조가 매우 단순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elephant라는 단어의 주요 글자의 위치를 보존한 elaphnet와 완전히 다른 형태인 epheanlt보다 전자의 경우가 훨씬 인식률이 높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뇌가 학습, 훈련된 양만큼의 차이로 문맥을 통해 빈칸을 추론하는 능력이 더 강력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또 다른 그림에서도 뇌가 숫자 퍼즐에 집중하게 되면 저 틀린 문장임에도 이해하고 게임을 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이 또한 'MITSAKE'라는 단어가 우월 효과로 작용한 것이다.
이처럼 학습 정도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평소 자신이 알고 있다고 여기는 관습적 표현이 종합적으로 당연하게 표출되는 것이고 이 관습이 주는 편안함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이 변화와 혁신의 모티브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보이는(아는)대로 보지 말고 그것이 정답이라고 말하지 말라’는 말을 필자가 좋아한다. 이 말뜻은 자신에게 보인다는 의미, 즉 오감 중 단순히 시각으로만이 아니라 뇌까지 전달되어 판단하고 입을 통해 남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이지 않은 주관성이 개입이 자칫 판단을 그르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 인체에서 시각 기관은 빛 감지, 단일 영상 형성, 다차원 형상 깊이와 간격 지각, 물체 파악과 분류, 신체 동작 구현 등의 여러 가지 복잡한 기능과 과정을 거쳐 본다고(보았다고) 하는 종합적 생각 표현의 일부이다.
그런데 여기서 일차원적인 시각으로 본 것(정보) 이외에 인간에게 더 중요한 현상은 개인 각자 가지고 있는 각자의 학습 경험에 따라 형성된 심리학적 특성들은 다 다르다. 같은 것을 보아도 유치원 아이들, 초등학교 아이들이 본 것과 대학생 그리고 직장인들의 본 것에 관한 표현 방식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시간과 공간과 인지한 것들의 차이가 있기에 다르게 발현이 되는데 이를 통틀어 시각(visual perception)이라고 한다.
‘알다(알고 있다)’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사전에 아주 잘 나와 있어 그대로 옮겨 본다. ①무엇의 어찌한 바를 배우거나 혹은 경험을 통해 깨달아 익히고 있다 ②사람이나 무엇과 사귀어 얼굴이 익다. ③무엇을 무엇으로 (잘못) 여기다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3번이다. 말로는 깨달았다고 하는 데 여기에는 많은 오류가 있다.
우리가 안다고 표현하는 지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앞선 사람이 쓴 글이나 강연을 통해 배운(익힌) 간접 지식이 있고 몸소 내가 실천해 경험을 통해 배운 직접 지식이 있다. 간접 지식은 전달하는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어(그들도 이미 그렇게 배운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의 안다는 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엄격하게 보면 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직접 경험한 지식은 온전히 자기 것이다.
생각은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며 인식하는 등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신적 작용이다. 결론을 얻기 위해 그간 보고들은 지식을 머리로 궁리하고 판단하는 과정(사고, 사유)이 지혜로 표출되는 것이다.
요즘 같은 AI세상에서 지식은 사람보다 인공지능이 훨씬 뛰어나 머리 속에 있는 간접지식에 근거해 말하는 앎보다는 인간의 경험과 사유로 터득한 지혜가 더 필요하다. 지식은 없어도 지혜가 뛰어난 어른들의 경우가 그것이다. 1+1=2와 같은 산술적 문제는 안다고 말해도 되지만 인간의 사상이나 세상 논리는 내가 주장하는 앎이 전부가 아니며 모르는 앎이 더 많을 수도 있기에 앎에 대해 겸허해질 필요가 있다. 또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도 있다. 뭐든 다 물으면 답을 내주는 인공지능 세상에 모르는 것에 대한 프롬프트는 참 지혜가 될 수 있다.
공자의 언행록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구절로 마무리한다.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아는 것을 안다고 하는 것도 아는 것이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도 참된 앎이다”


